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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른바 쌍둥이 블랙홀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대 캠퍼스를 찾아갔습니다. 블랙홀을 발견한 3학년 학부생을 인터뷰하기로 했습니다. 학생은 신천문대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45동이라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문제는 45동이 최근에 새로 지어져서 그런 것인지, 표지판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취재 차량은 4로 시작하는 여러 건물 주변을 뱅뱅 돌았습니다. 취재팀 4명 중에 길치도 없었는데 한참 헤맸습니다. 결국 스마트폰으로 물리천문학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오시는 길’ 지도를 연구한 끝에 도착했습니다.
설마 그 정도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서울대는 시내버스가 들어갈 정도로 캠퍼스가 넓고, 학생들에게 45동 어디냐고 물어보면, 자신의 학과가 아닌 이상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45동 근처에서 서울대생에게 45동을 수소문해도 정확하게 알려준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서울대에서 새로 생긴 건물을 찾는 것은, 우주에서 쌍둥이 블랙홀을 발견하는 것만큼 만만치 않은 것입니다. 캠퍼스 안에서는 대개 내비게이션도 무용지물입니다. 미국 MIT 학생들도 그렇게 건물 하나 찾는데 고생 좀 하는 모양입니다. 최근 캠퍼스 길을 안내해주는 작은 드론을 개발했습니다.
드론은 캠퍼스 어딘가에서 대기합니다. 그러다 누군가 ‘스카이 콜’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GPS 정보를 이용해 ‘콜’한 사람을 찾아갑니다. 이용자는 강의실 고유 번호를 입력합니다. 목적지입니다. 이제 드론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스마트폰 지도를 보면서 고민하는 것도 필요 없는 일이 됐습니다. 드론은 보행자를 천천히 앞서갑니다. 둘은 스마트폰을 통해 와이파이로 연결돼 있습니다. 신호의 강약을 측정해 신호가 너무 약해지지 않도록, 즉 보행자가 너무 뒤처지지 않도록 비행 속도를 조절합니다. 만일 보행자가 넘어지면, 드론은 기다려줄 줄 압니다. 꽤 똑똑합니다.
드론이 기특한 것은 친절함입니다. 건물 앞까지 안내한 뒤, 제 할 일 다했다고 가버리지 않고 실내로 들어갑니다. 문이 닫혀 있다면, 사람이 열어주는 수고쯤은 감수해야 합니다. 드론은 건물 사이의 구름다리도 지나고, 계단도 자유롭게 오르내립니다. 주요 연구실을 지날 때는 마치 관광 가이드처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드론은 그렇게 강의실 혹은 연구실 문 앞까지 보행자를 친절하게 데리고 갑니다. 다만 배터리 시간이 아직 충분치 않다고 합니다. 서울대만 해도, 걸어서 20분은 족히 걸리는 강의실이 수두룩합니다. 한참 가다가 떨어지면 큰일이죠. 사람 많은 곳에선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 드론의 숙명적인 약점입니다.
드론의 친절함, 그 기술적 바탕은 와이파이입니다. 곳곳에 설치된 무선 공유기의 신호를 잡아서 그 강약을 측정하고, 신호의 세기로 공유기까지의 거리를 추정합니다. 그런 무선 공유기가 3개 이상이면 실내에서 보행자 위치가 어디인지 계산해낼 수 있습니다. GPS가 위성 3개의 신호로 지상 위치를 확정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삼각측량법입니다. 요즘엔 상당수 대형 건물 곳곳에 무선 인터넷을 위한 와이파이 공유기가 설치돼 있어서, 따로 복잡한 설비를 들여놓지 않아도 이런 방식의 위치 측정이 가능합니다. 그만큼 저비용이고, 와이파이 잘 돼 있는 우리나라에 딱 알맞은 방식입니다. 측정 오차는 3m 안팎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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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기술도 있습니다. 프랑스 업체 모베아는 최근 미국의 한 호텔에 실내 내비게이션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어플을 실행하고 보행자의 성별과 나이, 키를 입력합니다. 그럼 예상 보폭에다 걸은 시간을 곱해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에 보행자 이동을 실시간으로 나타냅니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다양한 센서가 보조 역할을 합니다. 특히 압력 센서가 인상적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까지 내비게이션에 나타납니다. 센서가 상당히 민감해서 경사로를 서서히 올라가는 것도 감지해냅니다. 이 업체는 올해 우리나라를 찾아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비게이션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핀란드 연구진의 실내 내비게이션도 주목할 만합니다. 세계 최초로 '자기장'을 이용한 방식입니다. 같은 실내 공간에서도 구석구석이 고유한 자기장 값을 갖는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실내를 잘게 쪼개 격자 형태로 나눈 뒤, 격자마다 자기장 값을 여러 차례 측정해 평균을 내고, 그걸로 일종의 자기장 지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자기장 센서가 탑재된 스마트폰이 이동하면 화면에 경로가 그대로 나타납니다. 이 방식은 오차가 최대 1m로, 정확도가 다른 방식보다 높습니다. 연구진은 Indoor Atlas 라는 업체를 세워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물론 와이파이도 자기장처럼 강약을 측정해 ‘와이파이 지도’를 만들고 보행자 위치를 계산하기도 합니다. 이른바 핑거프린팅(지문 채취, fingerprinting)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삼각측량법을 보완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와이파이 기반 실내 길 안내가 있습니다.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에 맞춰 코엑스에 처음 도입됐는데, ‘마이 코엑스’라는 어플리케이션이 내비게이션 역할을 합니다. 또 용산 아이파크몰과 문정동 가든파이브에서는 ‘인가이드’ 어플을 실행하면 길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조만간 서울 왕십리역에도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합니다. 다만 코엑스는 지금 길 안내가 안 됩니다. 내부 인테리어 공사 중이기 때문입니다. 코엑스는 와이파이 기반 길 안내 중에서도, 핑거프린팅 방식을 쓰기 때문에, 이렇게 무선 공유기가 모두 철거되면 무용지물이 되는 게 단점입니다. 무선 공유기를 설치하면, 내부 와이파이 지도를 다시 구축해야 합니다. 좀 불편합니다.
건물 밖에서는 GPS, 건물 안에서는 WI-FI. 이미 스마트폰 안에 GPS와 와이파이가 모두 들어온 이상, 두 내비게이션의 통합은 시간문제입니다. 내비에 건물 주소가 아니라, 방 번호나 매장 이름을 입력하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길 잘 찾는 게 장점도 아니고, 길 헤매는 길치가 단점도 아닌 세상, 실내 내비게이션 기술이 사람들의 길 찾기 능력을 평준화시키고 있습니다. "SBS 5층 보도국 문화과학부에 도착했습니다. 경로 안내를 종료합니다" 이런 음성 메시지도 듣게 될까요?
박세용 기자psy05@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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