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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싸움서 밀린 노키아, 미적분 파괴력 못읽었다
◆ 수학이 세상을 바꾼다 ① / 수학이 일군 신산업 ◆

지난달 25일 서울 홍릉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다원물질융합연구소. '지잉' 하는 기계음과 함께 가로세로 50㎝ 크기의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하는 물체를 똑같이 만들 수 있는 '3D 프린터'다. 프린터가 작동한 지 30분 만에 눈앞에 있던 개구리 모양의 시각장애인용 교육도구와 똑같은 제품이 만들어졌다.
문명운 KIST 다원물질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시각장애인용 교육도구는 대량 생산보다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 적합하다"며 "3D 프린터는 소품종 대량 생산이라는 기존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3의 산업혁명을 일으킬 도구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3D 프린터에 '푸비니의 정리'라는 수학 원리가 숨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3D 프린터의 개념은 미적분 공식에서 시작된다. 3차원의 물체를 스캐닝한 뒤 이를 얇게 썰어 각 부분을 2차원의 평면 도면에 인쇄한다. 곡선을 잘게 나눈 뒤 면적을 구하는 미적분의 원리와 같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는 "정확하고 빠른 3D 프린터의 활용에는 수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분 적분을 응용한 푸리에 변환은 스마트폰에 적용되며 현대 산업의 변화를 이끌었다.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였던 노키아는 푸리에 변환이 근간이 된 스마트폰이 가져올 파괴력을 읽지 못해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의 근간에도 수학이 숨 쉬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수학 원리는 '푸리에 변환'이다. 푸리에 변환이란 정보를 곡선 모양의 그래프로 바꾸는 수식을 말한다. 19세기 수학자 조제프 푸리에가 만든 이 공식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거의 대부분의 전자통신 기기에 활용되고 있다.
한상근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에서 쓰이는 웬만한 기술은 모두 푸리에 변환을 응용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푸리에 변환이 탄생하지 않았다면 컴퓨터, 스마트폰, 전화기 등의 개발도 늦춰졌을지 모른다.
푸리에 변환은 4세대 통신인 'LTE'에도 활용된다. 인터넷을 통해 사용하는 모든 정보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신호로 바뀌어 저장되고 전달된다. 박형주 교수는 "푸리에 변환을 통해 데이터를 겹치지 않게 만든 뒤 보내면 빠르고 깨끗하게 정보가 전달된다"고 말했다.
컴퓨터의 진화에도 수학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50년대 개발된 1세대 컴퓨터를 보관하려면 커다란 창고가 필요했다. 컴퓨터가 진화하면서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빠른 계산을 할 수 있는 것은 20세기 중반에 발전한 '선형대수' 때문이다. 용량이 큰 정보를 압축하는 데 활용되면서 2세대, 3세대 컴퓨터로의 진화를 촉발시켰다.
동영상의 용량은 상당히 크다. 스마트폰으로 약 10초 동안 동영상 촬영을 하면 대략 10~20MB(메가바이트)의 저장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선형대수를 사용하면 이를 수십 분의 1, 수백 분의 1로 줄여 저장한 뒤 꺼내 볼 수 있다. 선형대수는 이미지나 영상이 갖고 있는 디지털 신호 중 대표값만을 뽑아내고 불필요한 부분은 버린 뒤 저장한다.
곽도영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는 "대표값을 오류 없이 빠르게 뽑아내는 것이 바로 수학의 임무"라고 말했다. 사람의 눈으로는 대표값으로 만든 이미지나 영상을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웨어러블 기기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사용에도 수학이 필요하다. 웨어러블 기기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몸에 맞게 착용한 뒤 사용자의 생체 신호를 파악해 이상을 느꼈을 때 빠르게 알려주는 것이다.
생체 신호인 정보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고 전송하는 데도 앞서 이야기한 푸리에 변환과 선형대수가 활용된다.
영상 처리에도 수학 원리가 어김없이 들어간다. 특히 최근 뿌옇게 초점이 안 맞는 영상이나 작은 영상을 선명하게 처리하기 위해 '인터폴레이션'이라는 기술이 이용되는데 미분이 기본 원리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재난 현장에서 사람을 대신해 일하고, 노인을 돌보게 될 로봇의 움직임과 인공지능도 수학이 책임진다. 로봇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 확률을 사용한다. 가령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두 가지 갈래길이 있을 때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것이 더 빠르고 안전한지를 확률로 계산한 뒤 선택한다.
공간에서 팔과 다리를 정확하게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X, Y, Z 세 가지 축 위에 로봇의 현 위치를 정확히 표시한 뒤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 상태인지를 판단해야만 한다. 이때 여러 좌표를 하나의 괄호에 넣어 표현하는 '행렬'이 사용된다. 로봇이 행렬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움직일 수 없는 각도로 팔과 다리가 이동하면서 고장날 수 있다.
병원에 가서 몸 안에 이상이 있는지 검사하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컴퓨터단층(CT) 촬영에서도 수학 원리가 쓰인다. X선이나 전자기장을 이용해 사람의 몸에 여러 각도로 쏘인 후 영상을 복원할 때 수학적인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용어 설명>
▶ 푸리에 변환
빛, 소리, 진동 등 신호 관련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푸리에 변환은 1822년 프랑스 수학자 조제프 푸리에가 만들었다. 푸리에 변환은 시간에 대한 함수를 주파수에 대한 함수로 변환하는 공식이다. 주파수를 시간에 대한 함수로 바꿀 때에는 '역푸리에 변환'이라고 한다. 처음 푸리에는 고체 내에서 열이 전달되는 방식을 알기 위한 작업으로 열전도 방정식을 만들었다. 이 방정식을 풀기 위해 푸리에 변환을 고안했는데 휴대폰, LTE, 영상 이미지 압축, 의료기기 등에서 응용돼 사용된다.
▶ 선형대수
선형대수학은 벡터, 행렬, 연립방정식 등을 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다. 공간이나 2차원 평면에 놓여 있는 값을 계산하는 학문으로 이미지나 동영상의 대표적인 값을 뽑아내는 데 활용된다. 선형대수를 이용하면 용량이 큰 그림이나 동영상을 압축해 저장할 수 있다. 20세기 초 헤르만 베일이라는 수학자가 벡터 개념을 정립하면서 산업에 응용되기 시작했다. 벡터 계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선형대수는 데이터 압축 이외에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물론 물리학, 양자역학 등에도 활용된다.
[원호섭 기자 / 김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