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샌프란시스코=유병률 특파원][[창조경제 벤처시대 3부] 에드윈 리 샌프란시스코 시장 인터뷰]
협업이 일상의 문화가 되고,창업이 라이프 스타일이 되고,창업가와 테크놀로지가 도시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곳.본문 이미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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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리 샌프란시스코시장이 집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유병률기자 |
어떻게 하면 우리도 실리콘밸리와 같은 벤처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어쩌면 우문이다. 실리콘밸리는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 날씨 좋은 이 한적한 동네에는 원래부터 돈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원래부터 스탠포드의 공학영재들이 있었고, 이 둘을 연결한 실험정신이 원래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북쪽, 샌프란시스코는 실리콘밸리에 끼지도 못하던 도시였다. 그냥, 남쪽 팔로알토, 마운틴뷰, 쿠퍼티노, 새너제이로 향하던 관문 정도. 금문교의 아름다운 석양과 히피문화가 관광객을 유혹하던 그런 곳이었다. 금융산업이 있다고 하지만, 뉴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도시.
그런데, 불과 2~3년 만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실리콘밸리 영재들이 샌프란시스코 골목골목 둥지를 이동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따라 실리콘밸리보다 더 많은 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위터,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 징가, 스퀘어, 옐프, 드롭박스, 에어비앤비 등 1800여 개 테크놀로지 기업의 4만5000여명 젊은이들이 ‘체인지더월드(change the world)'를 꿈꾸는 도시. 혁신과 스타트업은 도시의 문화임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곳.
미국 언론들은 이를 ‘샌프란시스코 모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런 변화를 이끌고 있는 에드윈 리 시장(61)은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는 또 다른 카테고리의 ‘비저너리(visionary)’로 불리고 있다. 스타트업이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이 되고, 혁신과 문제해결이 그냥 일상의 문화가 되고, 테크놀로지가 도시의 모든 것을 바꿔버린 조용한 혁명의 비저너리. 지난 7일 리 시장을 집무실에 만나 그 비결을 들어보았다.
중국계인 그는 아시아와 남미 등 소수민족의 이해를 대변해온 진보적인 인권변호사 출신. 도시개발을 명목으로 소수민족을 내쫓는 시당국을 상대로 수도 없이 고소고발을 하다, “그러면 당신이 한번 해봐라”는 제안에 23년 전부터 시청에 근무하게 됐고, 2년 반 전 시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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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전경. <출처:판도데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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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리 시장이 취임직후인 2011년 트위터 직원들과 센트럴 마켓 거리를 걷는 모습. <출처: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
“밑천은 문화의 충돌, 그리고 도시라는 것”리 시장은 “샌프란시스코는 혁신에 관한 한 미국의 수도”라면서 “혁신적인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테크놀로지 기업들의 허브이기 이전에, 창업가들의 허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허브이기 이전에, 사람들의 허브가 되어야 한다는 것.
“샌프란시스코 어느 길이든,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한번 가보시라. 적어도 2~3개 다른 언어를 들을 수 있을 거다. 재팬타운, 차이나타운은 물론, 거리 곳곳에서 수많은 종류의 음식과 문화가 툭툭 튀어나온다. 또 수많은 커피숍과 레스토랑이 있다. 그런 곳에서 젊은이들이 교류하고, 주고받고, 협업을 한다. 바로 이런 문화의 충돌, 도시라는 문화적 ‘세팅’이 창업가들의 창조적인 마인드를 자극한다.”
역시, 이질적인 것들의 부대낌, 그런 밀착이 가능한 공간, 그리고 차이에 대한 열린 마음에서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아시아인종이 33%, 남미인종이 15%에 달한다. 그는 “더 충돌할 수 있는 곳, 더 도시적인 곳에 창업가들이 몰리고 혁신이 나온다. 샌프란시스코는 바로 그런 곳”이라고 말했다.
어느 외진 곳에 창업가들이 일할 수 있는 빌딩 올린다고 혁신이 숨 쉬지는 않는다는 것. 옛날처럼 거창한 사회 인프라가 있어야 창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렇게 샌프란시스코로 몰리고 있는 젊은이들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직업군이다. 한 회사의 직원이면서, 또 다른 회사의 CEO이자, 또 어떤 회사의 엔젤투자자가 되기 때문이다. 명함 서너 장의 삶이다. 그래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몇 개의 기업이 아니라, 수많은 실험의 현장에 발을 담그는 것. 이것이 샌프란시스코가 정의하는 기업가이다.
돈도 이들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데, 최근 샌프란시스코 기업에 대한 벤처캐피탈 투자금액은 팔로알토나 마운틴뷰의 3~4배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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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
“창업가들과의 협업, 그것이 샌프란시스코를 만든 비결”리 시장은 일자리, 교육문제, 우범지대, 교통문제, 저소득층의 재기, 도시개발 등 샌프란시스코의 고질적 문제들을 창업가 커뮤니티와 협업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가 도시를 바꾼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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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행사에 나란히 참석한 에드윈 리 시장(왼쪽)과 론 콘웨이. <출처:테크크런치> |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엔젤투자가 론 콘웨이 주도로 만든 에스에프시티(Sf.citi)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6000여명 고등학생들을 샌스란시스코 스타트업에서 인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교사들과 커리큘럼을 개선하고, 경찰의 기동성을 위해 모바일 앱을 만들고, 버스 시스템 개선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도 지원하고 있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 단체인 베이쉐어(BayShare)와 숙박공유 서비스 에이비앤비는 시 재난위원회에 참여하는데, 재난사고 때 피해가정에 신속하게 숙박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또 샌프란시스코시는 리뷰서비스 옐프(Yelp)를 통해 시내 레스토랑의 위생평가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낙후하고 우범지대였던 ‘센트럴 마켓’은 트위터와 스퀘어 등 스타트업이 옮겨오면서 동네 자체가 바뀌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실업률은 2011년 9.5%에서 최근 5.6%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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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센트럴 마켓에 위치한 트위터 본사. <출처:블룸버그> |
리 시장은 최근 백악관과 공동으로 ‘앙트러프러너인레지던스(entreneur-in-residence)’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건강보험, 교육, 교통, 정부 데이터, 에너지 등 정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을 통해 정부서비스 역시 혁신하겠다는 것.
리 시장은 “도시발전을 위해서는 창업가 커뮤니티, 테크놀로지와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시에 일자리를 만들고, 도시의 오래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 정부 혼자서는 안 된다. 창업가들의 혁신적 마인드와 협업하지 않으면 안 된다. 테크놀로지가 도시를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는 또 “샌프란시스코는 공유경제가 탄생한 곳이고, 공유경제는 시민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과 일자리, 새로운 개념의 소비를 제공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가 공유경제를 더 키워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꼭 샌프란시스코시가 나서지 않아도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알아서 도시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우리 앞에 빤히 보이는 문제들인데, 왜 해결을 할 수 없겠냐’면서 말이다. 차량공유서비스 우버(Uber), 리프트(Lyft)가 이렇게 해서 생겨났고, 샌프란시스코의 빈곤선 이하 저소득층 여성들이 간단한 컴퓨터 지식을 배워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스타트업(Samasource)도 생겨났다.
이렇게 보면 샌프란시스코에서 테크놀로지는 산업의 한 종류라기보다, 도시생활의 모든 것을 바꿔내고 있는 문화인 셈이다. 문제해결과 창업이 라이프스타일이 돼버린 젊은 기업가들을 통해서 말이다.
“혁신의 생태계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협업할 수 있는 공간(도시)이 있고, 혁신적인 사람들(창업가)이 있다고 해서 도시의 혁신, 국가의 혁신이 절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맞다. 지금의 샌프란시스코는 운이 아니다.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혁신의 생태계는 리더십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자연발생적으로 혁신진화가 돼버린 실리콘밸리와는 다른 모델의 혁신진화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물론이다.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다. 창업가들에게 매력을 주는 리더십이어야 한다. 그들이 마음껏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밀착해야 하고, 그들에게 아주 호의적인 분위기(strong climate)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당국이 돈으로 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쓰는 돈으로 치면, 트위터 등 성공한 기업들이 도시발전을 위해 쓰는 돈이 더 많다. 그는 정부 입장에서는 법과 제도적인 이슈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때 트위터가 세금부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려 하자, 시의회를 설득해 세제를 바꾸었다. 원래 임금에 대해 부과하던 것(payroll tax)을 매출에 대해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 직원들을 더 고용해도 매출이 없을 수 있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지급임금에 대한 세금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신 트위터 등 기업들은 더 많은 고용과 시민들을 위한 더 많은 서비스를 약속했다. 그는 또 최근 캘리포니아주가 미국 최초로 차량공유 서비스를 합법화하는데 역할을 하기도 했다.
리 시장은 “한국도 할 수 있고,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인들도 경의를 표하는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삼성이 있지 않나. 삼성은 반도체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제조업체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이 되고자 한다. 더욱이 서울에는 우수한 대학들도 많지 않나.”
샌프란시스코보다 더 넓은 도시환경(서울이 5배 더 크다), 우수한 대학, 삼성 같은 대기업이 도시를 위해 제공할 수 있는 혁신의 생태계를 잘 활용한다면, 한국도 혁신의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경제가 풍요로워지려면 결국엔 사람이다”고 말했다. “테크놀로지를 통해 혁신을 하고, 세상을 빨리 바꿔나가야 하는데, 이건 결국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2~3단계 미리 내다보고 훌륭한 교육을 만들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모델을 한마디로 압축하라면,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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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리 샌프란시스코 시장. /샌프란시스코=유병률기자 |
물론 한국은 샌프란시스코와 많이 다르다. 규모도, 문화도, 창업가의 풀(pool)도. 하지만 귀 담아 들어야 할 것은 정부가 기획은 하되 계획과 주도는 창업가 커뮤니티와 기업의 몫이라는 것이다. 대신 2~3단계 앞서보고 인재를 길러내는 것. 그것이 사회문제이든, 생활의 문제이든, 내 앞에 문제를 발견했을 때 도전해서 고쳐보고자 하는 그런 자유로운 젊은이들을 길러내는 것 말이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는 젊은이라면, 스펙을 위한 어학연수 대신에 운동화 끈 조여매고 샌프란시스코를 뒤져보기를 추천한다. 창업이 어떻게 문화가 되고 라이프스타일이 되는지, 뜨거운 가슴 식기 전에 생생히 보고 듣고 배울 만하다.
※에드윈 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과 함께 미 공공분야 가장 혁신적 비저너리로 꼽힌다. 리 시장은 이달 20~23일 서울시과 코트라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한다.
<유병률기자 트위터계정 @bryuval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