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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들 반복되는 진흙탕 전쟁… "유럽처럼 넓고 길게 보는 정책 도입해야"]
- 한국 주파수는 한 치 앞만
데이터 이용 증가는 세계 최고, 주파수는 찔끔찔끔 나눠줘
쪼개진 주파수 놓고 과열 경쟁… 결국 소비자들 부담만 증가
- 유럽은 장기적인 정책
한국은 50㎒ 경매에 내놓지만 유럽은 200~575㎒ 나눠줘
많은 주파수 한꺼번에 할당
8월로 예정된 국내 4세대 이동통신(LTE)용 주파수 추가 할당을 앞두고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의 감정 싸움이 거세지고 있다. 상대를 향해 "꼼수를 부린다"는 비난도 서슴지 않고 있다. KT는 현재 1.8기가헤르츠(㎓) 대역에서 LTE용으로 사용 중인 주파수와 인접한 대역을 경매에 부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파수는 데이터를 전송하는 도로 같은 역할을 한다. 주파수 대역폭이 넓어지면 도로를 확장하는 것과 같아 많은 데이터를 빨리 전송할 수 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이를 막으려 하고 있다. "KT가 이 대역 주파수를 가져가는 건 특혜"라며 해당 주파수를 경매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본지 5월 10일자 B7면 참조〉.
이 때문에 업계에선 KT가 싼값에 인접 주파수를 낙찰받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업체가 일부러 입찰 가격을 높게 써 최종 낙찰가를 높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KT가 경매로 해당 주파수를 가져가더라도 싼값에 차지하지는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출혈 경쟁으로 주파수 확보 비용이 커지면 요금도 오를 가능성이 크다. 결국 부담이 소비자에게 돌아갈 공산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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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떼어 파는 경매로 경쟁 심화
전문가들은 주파수를 그때그때 조금씩 경매에 부치는 방식 때문에 이런 논란이 되풀이된다고 지적한다. 경희대 전자·전파공학과 홍인기 교수는 "데이터 이용량 증가로 주파수는 계속 필요한데, 주파수가 언제 얼마만큼 경매에 나올지 모르니 경매를 할 때마다 경쟁이 치열해진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모바일 데이터 이용량 증가 속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편이어서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KT 경제경영연구소는 지난 1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유럽 국가들은 LTE용 주파수를 경매할 때 한국의 2011년 첫 경매보다 4~10배 이상 많은 주파수를 내놨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2011년 총 50㎒ 폭의 주파수를 경매에 내놓은 반면, 유럽은 폭 200∼575㎒까지를 경매로 할당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대역에 흩어져 있는 주파수를 모아 한꺼번에 LTE용으로 경매에 부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미래창조과학부는 "우리나라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주파수의 사용 기한이 만료되는 시점이 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용도로 활용할 주파수를 모아서 경매하기 어렵다"고 했다. 주파수가 용도별로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는 말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 김현경 연구원은 "한국은 외국보다 통신 서비스 종류가 다양하고, 군용 주파수 등도 많이 할당돼 있어 외국에 비해 주파수가 더 심하게 조각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경매 바뀌어야 장기 투자 계획"
이 때문에 통신사들은 장기적으로 설비투자·기술개발 계획을 세우려면 주파수 분배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처럼 조금씩 할당하면 통신사들이 장기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당장 경매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근시안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경매를 진행할 때 향후 예상되는 수요와 공급 여건 등을 감안해가며 중·장기 배분 계획도 세운다"고 말했다.
하지만 SK텔레콤 관계자는 "유럽처럼 많은 주파수가 한번에 경매에 나오면 통신사들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주파수 확보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 기술개발에 나설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경매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경매를 할 때마다 소모적인 공방전만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올해 초 박근혜 정부가 정부 조직을 재편하면서 주파수 할당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를 미래부(통신용)와 방송통신위원회(방송용)로 쪼갠 것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방송용으로 쓰던 주파수를 이동통신용으로 전환하는 등 주파수의 용도를 바꾸거나 새로 정해야 하는 경우 방송업계와 통신업계의 입장이 서로 달라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며 "담당 부처마저 나뉘어 있으면 원활한 의사 결정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부는 부처가 나뉘면서 절차가 복잡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주파수 업무 배분은 여야 합의로 정한 것이어서 부처끼리 협의해가면서 정책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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