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지난 7월24일 ‘넥서스7′과 ‘안드로이드4.3′을 발표했는데 정작 시장에서 가장 큰 반응을 보인 것은 따로 있었다. 크롬캐스트다. 크롬캐스트는 스마트폰, PC 등 대부분의 기기에서 볼 수 있는 인터넷 동영상을 TV로 전송해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HDMI 동글이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에 담긴 콘텐츠를 쏴 주거나 미러링해주는 기기도 아니다. 크롬캐스트가 재생할 수 있는 콘텐츠는 유튜브, 넷플릭스, 구글뮤직, 판도라, 구글플러스가 전부다. 크롬에서 열리는 훌루, R디오, HBO 등도 볼 수 있다. 스마트폰과 크롬캐스트는 아주 단순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스마트폰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1분 32초부터 재생해줘’라고 요청하면 크롬캐스트가 그대로 재생해주는 것이다. 온라인에 있는 콘텐츠인 만큼, 불러와 원하는 부분부터 재생할 수 있다. 무거운 콘텐츠를 전송해주는 DLNA도, 화면 그대로 따라가느라 버거운 미러링도 아니다.
그런데도 크롬캐스트가 나오자 미국 시장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TV에 다는 이 동글이 고작 35달러밖에 안 한다. 게다가 미국의 티빙 격인 넷플릭스 3개월 이용권을 끼워준다. 이게 24달러니 어차피 넷플릭스를 보던 이들은 딱 11달러에 이 동글을 구입하는 셈이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구글의 플랫폼을 이용해 직접적으로 가입자를 늘릴 수 있는 서비스니 3개월 이용료를 감면해줘도 앞으로 잠재 고객이 될 수 있는 만큼, 남는 장사이긴 하다.
어쨌든 미국시장은 지금 크롬캐스트로 들썩이고 있다. 너무 잘 팔려서 하루만에 초기 물량이 매진됐다. 이후에는 넷플릭스 3개월 이용권이 빠진 채 판매된다. 넷플릭스와 약속한 수량이 다 채워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크롬캐스트의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듯하다.
이를 통해 스마트TV의 미래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35달러짜리 동글이 나오면서 값비싼 스마트TV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아니라고 말했으면 좋겠는데 딱히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도 어렵다. 현재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스마트TV란 유튜브, 넷플릭스, 훌루 등 OTT 서비스를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는 TV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시장조사기관 NPD가 조사한 내용을 살펴보면 세계 스마트TV중 인터넷에 물려 있는 TV는 15%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주 용도는 60%가 방송 스트리밍 OTT다. 다음은 음악으로, 15%를 차지한다. 무려 75%가 스트리밍 용도로 스마트TV를 쓴다. 크롬캐스트는 딱 이 2가지 기능에 충실하다. 국내에서도 스마트TV 앱 중 가장 큰 반응이 있었던 게 바로 ‘티빙’이다. KT는 스마트TV의 티빙 서비스가 소비하는 트래픽이 너무 많아서 감당할 수 없다며 삼성 스마트TV가 인터넷에 접속하는 포트를 막아버렸다. 통신사의 억지가 끼어들었겠지만, 실제 쓰는 사람이 꽤 있었다는 얘기다.
그나마 한국은 집집마다 케이블TV나 IPTV, 위성방송 등 공중파 외 방송을 볼 수 있는 창구가 많다. 요금도 싸다. 반면 케이블TV의 비중이 매우 높은 미국에선 상대적으로 요금이 싼 인터넷 기반의 OTT 서비스가 인기다. 일반 케이블 TV는 몇십달러에서 비싸게는 100달러 가까이 내는 상품도 있다. 모든 채널은 아니지만 볼만한 방송들을 골라 고작 월 7달러에 볼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굳이 몇백달러씩 더 내고 비싼 스마트TV를 살 이유가 없다. OS도 고를 필요 없고 HDMI포트만 있으면 300달러짜리 값 싼 TV를 사도 필요한 기능은 다 해준다.
하지만 이걸 스마트TV의 범주 안에 넣기는 여전히 애매하다. 그렇다고 셋톱박스나 수신기 등으로 분류하기도 개운치 않다. 이건 구글이 포인트를 잘 잡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초기에 뛰어든 넷플릭스가 잘 했다. 넷플릭스는 일단 프로모션을 통해 크롬캐스트와 직접적으로 연결지었고 크롬캐스트를 시작으로 1080p의 고화질 서비스도 열었다.
넷플릭스를 볼 수 있는 기기가 크롬캐스트만 있는 건 아니다. 돈으로만 친다면 10~20달러면 살 수 있는 MHL 케이블을 구입하면 쓰던 안드로이드폰을 연결해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애플TV와도 직접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 애플TV도 사실 비슷한 역할을 한다. 유튜브와 아이튠즈에 한정돼 있지만, 이 콘텐츠들을 보내면 스마트폰에서 태그 정보만 받아 애플TV가 직접 콘텐트에 접근해 원본 영상을 재생한다. 다만 여기에 ‘에어플레이’라는 자체 규격의 미러링 기술을 넣어 애플 기기 내의 로컬 콘텐츠나 화면에 떠 있는 게임 화면을 직접 미러링해준다.
그동안은 애플TV도 99달러로 아주 싸다고 했다. 그런데 구글은 그것조차도 당장은 필요 없다고 본 게 아닐까? 그저 보던 방송을 불러오기만 하면 된다. 아니면 더 나은 기능을 가진 구글TV에 들어갈 기능 한 가지를 실험적으로 내놓았을 수도 있다. 애플TV는 조용하지만 꽤 많이 팔린 기기다. 그런데 당분간은 크롬캐스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 같다. 현재 미국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려운 스마트TV 대신 넷플릭스를 아주 싸게 볼 수 있는 기술이 생겼다는 것에 더 반응하는 모습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서비스가 없지 않았다. SK텔레콤이 한동안 밀었던 ‘호핀’이다. 완전히 똑같은 서비스라고 할 순 없지만 호핀 서버내에 담긴 콘텐츠를 스마트폰, PC, TV를 오가며 재생할 수 있도록 했던 기본 원리와 기술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호핀 역시 모든 콘텐츠는 서버에 두고 영상 정보만 전송하는 방식이다. 그러고 보니 LG유플러스가 tvG에 적용한 N스크린도 닮았다. 방송을 보다가 NFC를 태깅하면 보던 방송이 스마트폰으로 들어오는 바로 그 서비스 말이다. 물론 잘 안 된 이유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시 스마트TV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스마트TV는 뭘까? 원론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사실 스마트TV는 딱히 정의가 없다. TV의 기능을 확장한 개념이라고 보면 될까? 그럼 현재 소비자들이 원하는 확장 기능은 뭘까? 스마트TV로 게임을 한다거나 웹서핑,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즐기려는 수요는 별로 없다. 대신 방송 콘텐츠를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크롬캐스트는 아주 단순하지만 기본 기능을 탄탄하게 가져가는 기기다. 100가지 기능을 넣은 스마트TV와 1가지 기능을 확실히 넣은 크롬캐스트의 맞대결이 벌어진다면 지금으로서는 크롬캐스트가 유리하다. 이용자들이 이걸 스마트TV라고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 단말기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TV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창구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간 앱 개발부터 생태계 고민까지 해 온 스마트TV 업계로서는 허탈할 수 있다.
그렇다고 크롬캐스트가 스마트TV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오히려 현 상황에서 필요한 요구를 잘 파고들었다. 소비자가 포스트 TV에 가장 원하는 게 뭔지 확실히 찾아준 첫 번째 사례다. 플랫폼 업체들과 하드웨어 업체들 모두 뭘 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기회도 열었다. 소비자들이 스마트폰과 TV를 연결해서 쓰고 TV가 인터넷을 활용한다는 것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여기에서 미러링도 원할 것이고 게임도 하길 바랄 것이다. 그 진입 장벽으로 35달러짜리 크롬캐스트는 기가 막힌 구글의 한 수다.
아 참, 호기심에라도 국내에서 이 기기를 샀다가는 썩 재미를 보지 못할 게다. 넷플릭스, 훌루 등은 미국 외 국가의 IP를 차단한다. 유튜브와 플레이스토어, 크롬 브라우저만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국내에서 35달러를 쓰기에는 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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